세상 이야기

방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당신은 제다이인가 시스로드인가

seanny boy 2023. 1. 26. 19:17

' 최근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미국 친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워즈를 빗대어 민수사업부는 Light Side, 방산사업부는 Dark Side (다스베이더)라고 부르는데 같은 사람도 사업부가 바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

방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비 경쟁을 쫓아갈 수 있는 '양적 역량'과 빠르게 바뀌고 있는 전쟁에 적응할 수 있는 '질적 역량'을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 최후의 만찬, 그리고 합종연횡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에 따라 방산도 여러 차례 리빌딩을 거쳐왔다. 1993년에 미국의 국방부 차관 (94년에 장관으로 승격한 것을 보니 이때에도 이미 실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William Perry는 미국을 대표하는 방산기업의 중역들을 모아 놓고 대형화를 위한 통합을 권고했다. 냉전이 끝났으니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 (미국에선 이 회담을 두고 성경 속 일화에 빗대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른다)

당시 미 정부는 인수합병에 들어간 비용 중 상당 부분을 국비로 부담해 줬을 만큼 재편을 서둘렀다. 의회가 '독점'을 이유로 반대할 것을 예상해 기업들에게 법률 컨설팅을 해주기 위한 TF까지 꾸렸을 정도

그 결과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통폐합이 이뤄졌고 40여 개가 넘는 방산기업들이 Big 5 중심으로 재편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Lockheed Martin, Boeing, Northrop Grumman, Raytheon, General Dynamics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 바로 이때. 질세라 유럽도 BAE Systems 등 대형화를 강행한다.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방산기업들의 등장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미 정부는 기업들이 폭 넓어진 기술력을 기반으로 민수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Boeing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Lockheed Martin도 민항기, 위성통신 등을 시도했으나 비주류 사업에 그쳤다

★ 보이지 않는 적의 등장

 

 

'테러와의 전쟁'은 제2의 방산 붐을 일으켰다. 2001년부터 10년 사이 미국의 국방비는 무려 70%나 증가. 닷컴 버블이 꺼져 낙심해 있던 투자자들도 대안으로 방산을 선택해 힘을 실어 주었다

 

기업들은 흘러 들어온 자금을 어디에 썼을까? 그동안 미군의 계획은 평원에서 러시아 전차 행렬을 막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짜여 있었으나 이제는 '피아 구분이 어려운 사막에서의 전쟁'에 적응해야 했다. 감시정찰, 첩보전 역량에 대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사업부 이름에 Intelligence를 붙이는 것이 유행한 것도 이때

★ 긴축의 시대

 

 

2008 금융위기가 터지며 국면은 또다시 바뀌었다. 오바마 정부는 국방비에 상한치를 걸어 군비 감축을 유도하는 BCA (the Budget Control Act)를 통과시켰다

 

이 시절 기업들의 제1 목표는 단연 내실 개선이었다. 영업, 연구소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경영진 면면에 재무 전문가들이 늘어났다. ‘민간의 효율적인 DNA 접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영입된 외부 인사들이 회사를 조이고 나누었다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경기가 살아나고 중국, 러시아의 도전이 거세지자 미국도 다시 강경 기조로 돌아섰다.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의 국방비는 50%나 올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정부에 호응하여 기업들도 파이팅을 외쳤다. Raytheon과 UTC, L3와 Harris의 합병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합병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던데 정말 합치는 건 아니겠지)에 비견될 만한 메가톤급 이벤트였다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눈에 띄는데 Northrop Grumman은 Orbital ATK, L3H Harris는 Aerojet을 인수하였다

★ (근거 없고 100% 내 생각인) What’s Next

 

 

지난 30여 년간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밀물과 썰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쉽사리 예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첫째, 최고보다 최적을 선호하는 시대

전 세계 국방비는 군비경쟁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당분간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 재원이 부족한 정부 입장에서는 지갑을 열기는 하되 비용을 더욱 깐깐하게 따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방산도 최고가 아니라 최적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

둘째, 방산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각국이 (심지어는 호전의 DNA를 제거한 것 같았던 독일마저) 재무장의 길을 걸으면서 자국 방산 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방산은 하루아침에 육성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각자도생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자국 방위산업 육성의 의지는 커질 것

** 인도는 아예 ‘방위산업 수입 제한’을 입법화하여 무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의 변모를 노리고 있다 **

셋째, 민간과 방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NSSL의 Space X, IVAS와 JWCC의 Microsoft 등 전통적 방산업과 거리가 먼 기업들이 국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NCW(Network Centric War) 전투력이 주목을 받을수록 이런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인공지능, 무인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방산의 접목은 갈수록 늘어날 예정이다. 문제는 결이 다른 두 분야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느냐다. 기존의 방산기업이 이러한 신기술에 적응하는 것이 빠를까, Tech 기업들이 방산업에 적응하는 것이 빠를까

' 앞으로의 방산은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변화도 함께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규칙과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 Light Side도 Dark Side도 아닌 퓨전에 능숙해야 하는 시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