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이야기

항공과 우주: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seanny boy 2023. 1. 7. 11:21

80년 전으로 시계를 감아 1941년으로 돌아가 보자,

해외여행은 ‘새로운 짜릿함’을 원하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미국 땅을 횡단해 LA와 보스턴을 오가는데 드는 객단가는 (비교 편의를 위해 모든 비용은 2019 USD로 환산) 4,540 달러였다. 이는 2015년의 480 달러에 비해 거의 10배에 달하는 비용이다.

 

티켓만 저렴해진 것이 아니다. 시간은 곧 금이라고 했던가? 당신이 비행기로 미국을 횡단하려면 16시간이라는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 항공기 주유와 정비를 위해 무려 12번이나 도중하차해 대기하는 시간은 빼고! (입에 맞지 않을 순 있겠지만) 밥 먹고 기내 영화 2편 보면 원스톱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지금에 비하면 매우 길고 힘든 여정이다.

기술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비행기의 연비가 떨어졌고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도 적었다. 적국의 영공을 날아다녔다가 격추당하지 않기 위해 훨씬 더 먼 길을 돌아가는 등 제대로 된 글로벌 항공 수칙의 부재도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시대를 가리켜 ‘Golden Age of Travel’이라고 불렀다. 전쟁무기라고 여겨졌던 비행기가 민간인들에게 허용되어 하늘길이 열린 것 자체가 대사건이었던 것. 고작 10여 분 남짓 동안 (정말 우주가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고도 100km의 카르만 라인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뉴스가 되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항공과 우주는 ‘소수를 위한 럭셔리’를 넘어 ‘모두를 위한 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여러모로 닮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민수 항공산업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세계를 대표하는 유명 항공사들이 등장한 것은 40~60년대지만 이들이 정부의 인큐베이터를 나와 진정한 민수항공의 역사를 연 것은 80년대부터다 (미국 연방정부가 항공 요임을 정해주는 ‘가격 담합’을 그만둔 것이 1978년이다, 항공산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수익성을 보장해 준 것).

 

 

이제 준비가 됐다고 여긴 정부가 80년 대부터 슬슬 뒤로 물러서자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항공사 줄도산 등 성장통도 있었지만 경쟁은 결과적으로 항공산업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이제 항공산업은 과거보다 훨씬 싸고 안전하고 다양한 항공기 라인업을 제공한다. 더 이상 ‘누가 이 비행기를 격추하려고 들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승객은 없으며, 전 세계 공항과 항공국들은 하나의 글로벌 항공 메커니즘 안에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 1990년~2016년 사이에 항공기 객단가는 무려 40%나 저렴해졌다. 같은 기간에 기름값이 110%나 오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

덕분에 부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긴장 어린 표정에 비싼 정장을 두른 사람들 대신 반바지, 슬리퍼로 무장한 사람들이 비상구 앞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모습으로 바뀐 오늘날의 기내는 조금 덜 멋스러울 순 있겠으나 '진보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감격스러운 광경인 것 (과거의 고풍스러움도 남은 것이 전부 '흑백 사진'인 덕분 아닐까?)

돌이켜보면 전화, 컴퓨터, 인터넷…새로운 기술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머릿속 상상(혹은 망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용기 (때로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를 내기 위해서는 뭔가 극적인 동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전쟁인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면서 쏟아부은 재원이 마중물이 되어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검증된 잠재력은 이 시대 프로메테우스들의 노력으로 일상이 된다.

제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에게 영원히 반복되는 형벌을 내렸다. 하지만 신화가 아닌 역사에서 제우스 같은 왕이 다스린 나라는 모두 망했다. 불은 나누어 줄수록 늘어나는 것처럼 기술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의 민수 항공사업 투자는 수십수백 배의 이익이 되어 돌아왔고 이제는 일방적인 기술 이전이 아니라 스핀 온-스핀 오프 선순환으로 미국의 국방기술을 강화하는 이노베이션 파트너가 될 만큼 그 수준이 올라갔다.

** 항공기는 미국의 대표 수출품목이며 (코로나 전 2019년 기준으로는 1위였다) 엔지니어, 유지보수, 항공사 직원, 파일럿 등 수백만 개의 고수익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간산업이다 **

 

 

 

우주도 비슷한 여정을 걸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민간 우주사업을 놓고 그게 과연 가능하냐고 물었다. 소위 뉴스페이스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그 가능성이 검증되자 이제는 그게 과연 돈이 되겠느냐, 또는 (우주여행에 갈 돈이 없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후위기와 자원고갈이라는 위기를 배경으로 전 세계가 우주를 향한 투자를 늘리면서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적어도 우주가 지금보다는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