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이야기

이름의 힘: 우주에 멋진 이름을 붙여주자

seanny boy 2023. 1. 16. 18:51

나로호, 누리호 그리고 다누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주 프로젝트에 붙은 이름들이다. 확실히 KSLV, KPLO와 같은 (차가운) 프로젝트 명에 비하면 개성도 느껴지고 감정이입하기도 쉽다

브랜드가 가지는 힘은 크고도 무겁다

브랜드는 듣고 부르는 이의 무의식 속에 그 주인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심는다. 나라 이름, 기업의 상품명, 영화의 제목, 캠페인의 슬로건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관계와 가치가 담기며 네이밍을 얼마나 잘했는지에 따라 그 호소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 심지어 소련이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이유로 실패한 작명을 꼽는 사람도 있다! (확실히 USSR은 USA에 비해 한 번에 이해가 가지도, 입에 잘 감기지 않는다)

 

 

서울시가 새로운 도시 슬로건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기존의 I•Seoul•U는 ‘문법도 틀리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모르겠다’는 쪽과 ‘신선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려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 개인적으로는 꼭 정형적인 영어 문법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나 싶긴 하다. 일종의 Meme이 된 덕분에 얻는 홍보 효과도 있었고, 우리가 흔히 쓰는 신조어를 두고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진 않지 않나 *

약 2,000여 개의 후보작 중 4개의 최종 후보가 선정됐으며 국민 선호도 조사를 거쳐 2월까지 최종 당선작을 선정할 예정이다 (FYI -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엄선된 Final 4는 다음과 같다

• Amazing Seoul

• Make it happen, Seoul

• Seoul, my soul

• Seoul for you

 

 

흠... 삘이 확 오지 않네...

좋은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일까?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할 ABC는 이 정도 아닐까

1. 짧아야 한다

기본이다 (임팩트는 물론이고, 아마 글자 하나 줄여서 아끼는 비용도 어마어마할 것)

2. 입에 잘 감겨야 한다, 리듬감도 중요

그래야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리고 불러준다

3. 감정이 담겨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름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4. 뭘 하는지(또는 하려고 하는지) 알기 쉬워야 한다

그 뜻을 ‘설명해 줘야’ 하는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니다

* 고백하자면, 나도 응모에 참여했었다 (Seoul, your soul-mate), 다시 보니 이것도 그다지... *

탈락의 씁쓸함을 되새기며, 앞으로 쏟아질 우주 프로젝트는 어떤 네이밍을 붙여주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봤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이라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꼭 순우리말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담긴 뜻은 아름답지만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뜻을 알기 어렵다

2. 발음에도 사람처럼 성별이 있다

나로호, 누리호, 다누리는 굳이 구분하자면 여성성이 강한 이름이다 (내 느낌상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음성학 기준으로) 각각 개별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넘어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브랜드를 그리는 차원에서 앞으로 지을 이름에는 다채로움을 더하는 게 어떨까, 주 관심층이 남성인 발사체의 경우 좀 더 남성성이 드러나는 이름을 붙인 다든지

3. 영문 표기도 감안하고 짓자

옮겨 쓸 때 Spelling을 고민해야 하는 네이밍은 최악 (이 점에서 기존의 이름들은 훌륭하다)

4. 이름과 별개로 슬로건도 있었으면

Catchy 한 슬로건에 우리의 비전을 담으면 어떨까,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Soul’이 조금 아쉽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슬로건 이니셜과 이름을 연계하면 (e.g. LG, Life is Good) 동반 상승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누리호와 다누리 이름 공모에 참여했다가 떨어져서 거는 시비가 아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올해는 차세대발사체와 달 착륙선 프로젝트가 첫걸음을 떼게 될 한 해다

프로젝트의 마무리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이름을 붙여주던 기존의 전례(누리호는 8년, 다누리는 7년을 제대로 된 이름 없이 보냈다)를 벗어나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이름을 주는 것은 어떨까. 해외 마케팅이나 국민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