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이야기

항공산업 삼국지: Boeing, Airbus, 그리고 중국

seanny boy 2023. 1. 23. 14:13

★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앞으로

21세기에 항공산업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긴 호황을 누렸다. 제3 세계의 경제 수준이 올라간 덕분에 해외여행 수요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Boeing과 Airbus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 만들 것을 요구받았다 - 소위 표준 계약이란 것에 '주문을 넣기 전에 알아서 (업체 부담으로) 재고를 쌓아 놔야 한다는 조항이 달려 있던 시절이다... 세게는 더 가까워지고 사람들은 더 자주 공항을 이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마치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성장을 견인한 가장 큰 엔진은 중국이었다. 항공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유럽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성장세인데 Boeing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에 17%, 2017년에는 20%, 2018년에는 23%까지 올라 29%인 미국 시장에 버금가는 규모까지 커졌다, Boeing이 미국에서 홈그라운드 혜택을 누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중요성은 이미 미국과 대등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 격변의 시대

하지만 잘 굴러가던 엔진이 2019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자 중국은 Airbus를 노골적으로 편애하기 시작한다. 때맞춰 터진 Boeing 737 사고는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준 격. 이때를 기점으로 Boeing은 중국 시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Boeing vs Airbus: 민항기 중국 판매 실적]

2017년: 161대(B) vs 181대(A)

2018년: 192대(B) vs 164대(A)

2019년: 45대(B) vs 178대(A)

2020년: 6대(B) vs 104대(A)

코로나 영향으로 Airbus도 하향세를 기록했지만 아예 거래를 끊어버린 수준인 Boeing에 비하면 양호하다, 그나마 근근이 팔린 Boeing 항공기도 미-중 관계가 험악해지기 전에 계약한 물량

★ 미-중 갈등의 선두에 노출된 보잉

바이든 행정부는 우방들과 반도체 동맹을 결성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월동주라고 했던가?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장비'를 맡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미국과 협력하겠지만 미국의 대중 규제를 Copy & Paste 해서 따르진 않을 것이라고

반도체 전쟁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중국을 대하는 미국과 유럽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Boeing은 미중 관계가 해소되기 않는 한 중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가 어렵다 (전략적 유연성이 떨어진다). 반면 Airbus는 미-중 관계 악화를 틈타 실리를 챙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Airbus는 현지 생산을 늘리는데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Boeing이 기술보호 규제,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는 의회의 반대에 부딪친 반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한때 Boeing도 737 조립공장을 중국에 설치하는 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Airbus는 중국 톈진에 대규모 완제기 공장을 짓고 대부분의 물량을 현지에서 공급한다 (공장 설립 첫해에 알려진 것만 수십 건의 대규모 해킹을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 C919 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러한 Airbus의 호의에 중국도 화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과의 힘겨루기가 한참이던 2019년, 시진핑 주석은 유럽과의 우호 관계를 과시라도 하듯 순방 자리에서 40조 원의 Airbus 항공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작년에는 50조 원에 달하는 주문을 추가로 결정해 몇 년째 손가락만 빨고 있는 Boeing을 서글프게 했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도 우리는 중국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 는 근거 없는 정신승리나 하는 Boeing의 임직원들은 처량해 보였다, 하긴 솔직하게 말할 순 없잖아

Boeing은 당분간 2인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히 줄어든 매출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항공업계의 표준은 미국식과 유럽식을 양 축으로 한다. 부진이 길어지면 표준을 정하는 영향력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항공기 생산량이 줄어들면 글로벌 항공 생태계에 대한 지배력도 줄어들 것이다. '최고'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빼앗긴 것도 속 쓰린 일이고...

★ 항공굴기를 꿈꾸는 중국

하지만 Airbus도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순 없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첨단 제조업을 국산화, 내재화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항공우주도 포함되어 있다

 

 

작년 12월, COMAC이 15년 가까이 공들여 개발한 C919를 인도했다, 비록 자국 고객 (China Eastern Airlines) 이긴 하지만 Boeing과 Airbus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게 경종을 울리기엔 충분한 이벤트였다

COMAC은 중국이 국산 여객기를 개발하려고 세운 국유 회사다. 중형기인 C919에 앞서 개발한 소형기 ARJ21은 이미 운행 중이며 작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수출까지 했다.. 그래봤자 내수 전용이라고 비웃을 수 없게 됐다!

 

 

물론 중국이 당장 Boeing과 Airbus를 쫓아내고 C919로 중국 하늘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중국은 우버와 구글을 쫓아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고 그 빈자리를 중국 기업이 채우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항공기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C919의 안정성이 검증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거리도 짧기 때문에 후속기종으로 개발하고 있는 C929이 라인업에 더해져서 그나마 자국 수요를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C919이 아직은 순수 중국산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 날개, 동체 등 몸통에 해당되는 부위는 중국이 만들지만 엔진, 항법장치 등 장기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들은 미국, 유럽의 물건을 가져다 쓴다. 중국 언론이 공식적으로 말하는 C919의 국산화율은 60%이지만 개인적으론 끽해야 50%라고 본다. 만일 중국이 대놓고 항공기 수입을 막아 버리면 서양도 부품 수출을 끊는 방법으로 대응 가능하다. 적어도 한동안은 찜찜한 공존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새로운 공식이 필요한 시대

지금 세계를 덮친 변화를 항공만큼 잘 보여주는 산업도 없을 것이다. 중국의 기술 자립은 성공할 수 있을까, Boeing은 보잉의 미-중 디커플링에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 새로운 지위를 원하는 중국과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가 가능했던 기존의 SCM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마스크와 PCR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항공산업이 적응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