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강국 일본, 그 포트폴리오에서 모자란 단 하나의 피스'
미쓰비시 중공업 (이하 MHI로 약칭)가 SpaceJet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비보라면 비보인데 분위기는 알리는 사람도 듣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덤덤했다. 이미 프로그램이 좀비가 된 지 오래됐고 안락사 버튼을 누를 때만 기다리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조강국이자 이미 1910년대에 비행기를 만든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산 민항기가 없다는 것은 자존심 구기는 일, 일본은 1986년에 소형기(~10인승) 혼다젯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항공기 개발은 자동차와는 난이도의 차원이 달랐다. 연구소를 미국에 설치하고 GE와 2인 3각 파트너십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난항을 거듭했다. 혼다젯이 FAA 감항인증을 받은 것은 2015년, 개발 시작으로부터 거의 30년이 걸려서다. 품질의 혼다답게 안정적인 성능으로 평판이 좋았지만 (내가 몬 생애 첫 차는 혼다 Civic이었는데 진짜, 정말 고장이 안 나더라) 애초에 소형 비즈니스젯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가 그동안 투입한 돈이 워낙 많아 언제 본전 회수가 가능할지 가늠도 가지 않는 상황
따라서 일본 국민들이 정말로 기대했던 것은 혼다젯보다는 70~90인승 중형기인 SpaceJet (원래 명칭은 MRJ: Mitsubishi Regional Jet)이었다. 2008년, 일본 정부가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MHI가 개발하는 민관 합작 프로젝트로 SpaceJet 프로그램은 야심만만 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항공기 부품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기대도 컸다, 그러나
그 대단한 MHI도 부품개발과 체계종합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간격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출시 시점이 무려 6번이나 밀렸고, 그 사이에 개발비는 최초에 예상했던 1,500억 엔에서 1조 엔으로 늘어났다. 어려움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민항기 감항인증의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컸다. 2019년, 평판 만회를 위해 프로그램명을 MRJ에서 지금의 SpaceJet으로 개명했지만 제품 없는 브랜드가 무슨 소용인가
모사는 재인이고 성사는 재천이라고 했던가? 2020년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는 일본의 처절하기까지 했던 모든 시도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래도 해보자’는 쪽이었던 일본의 언론도 서서히 부정적으로 돌아서기 시작
이미 프로그램은 2021년부터 ‘의도적 방치’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있었다. MHI가 SpaceJet 개발을 위해 세운 Mitsubishi Aircraft Corporation은 2021년 이후 홈페이지 리뉴얼이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늘 들어가 봤는데 사업을 포기했다는 소식도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
아마도 결정은 진작에 내려졌고 단지 적당한 발표 시점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언제 개발이 끝날지, 끝나더라도 과연 시장성이 얼마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는 프로그램에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업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보다도 항공기 체계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한 것이 컸다. 이 밖에도 친환경을 강조하는 기술 트렌드, 파일럿 감소 등 코로나 여파, 국제 기술협력을 금지하는 각종 규범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온갖 문제들이 골고루 겹쳐 프로그램을 좌초하게 만들었다.
회사는 앞으로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Boeing 등 글로벌 OEM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 둘째, SpaceJet을 개발하면서 얻은 기술과 노하우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 즉 민항기 OEM의 꿈은 접었다는 소리다...
역시 항공우주 체계종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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