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이야기

하늘의 호텔 A380로 읽는 사업의 본질

seanny boy 2023. 2. 18. 20:13

 

 

- 2007년, 첫 A380이 서비스를 시작

- 2012년, A380을 더 크게 만든 A380plus(!!!) 개발계획을 발표

- 2017년, 에어버스가 A380은 10년 후에도 건재할 것이라 주장

- 2019년, 에어버스가 A380 생산중단 계획을 발표함

- 2021년, 최후의 A380 비행기가 Emirates에 인도됨

Boeing의 B747이 독점하고 있던 대형 항공기 시장. 이 독점구조를 깨려고 Airbus가 야심 차게 들고 나온 것이 A380이다. B747보다 약 20~30% 더 크고 (최대 860여 명 탑승) 2층 구조에 샤워룸 등 다양한 편의 시설로 무장해 ‘하늘의 호텔’이라고 불렸다

시작은 좋았다. 넓은 공간과 럭셔리 시설로 세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1,500여 개의 회사가 힘을 모으고 30조 원의 개발비가 들어간 이 초대형 프로젝트 덕분에 Airbus는 그토록 원했던 ‘최고, 최초, 최대’라는 타이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유럽 항공기술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극찬이 나올 만큼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A380의 판매 누적은 251대로 애초에 계획했던 700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경쟁자 포지션인 Boeing의 B787이 1,000대 넘게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결과다.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같은 집안 출신인 A320가 1984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대체 A380은 왜 실패했을까?

* 시장을 잘못 읽었다

Airbus는 도시 과밀화가 심해질수록 대형 환승 공항들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Hub & Spoke 모델) 최대한 많은 승객을 Hub 공항으로 옮길 수 있는 대형기에 집착했다

반면 Boeing은 전 세계 각지에 지역공항이 생겨 직접 연결되는 Point-to-Point 모델이 항공의 미래라고 봤다. 이에 대비해 작은 공항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며 탑승객 숫자가 적은 대신 운영비가 낮은 소/ 중형기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시대는 Airbus보다는 Boeing이 예측한 방향으로 흘렀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2013년 18%에서 2017년 11%로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추세다. 예측했던 것과 달리 도시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공항 계획이 늘어났으며 틈새시장을 노린 LCC들이 등장하면서 항공도 슬림을 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하늘여행이 신기한 체험이 아니게 되면서 ‘그냥 싸고 편하게 다녀오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승객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가 됐다

이렇게 되자 한번 뜰 때마다 엄청난 돈이 드는 A380은 항공사들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됐다. 유지비는 똑같이 드는데 그 큰 비행기를 가득 채우지 못하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작은 로컬공항과 단거리 노선을 이용해 항공노선을 유연하게 짜기 어렵다는 것도 약점

*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도 틀릴 수밖에

A380은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시장에 대한 진단이 틀렸던 까닭에 첫 단추부터 잘못 맬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엔진인데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과거엔 4발기만 가능했던 장거리 비행이 쌍발기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됐지만 A380은 4발기로 나왔다

이 밖에 세세한 설계에서도 A380은 몇 년 뒤 쌍발기로 나온 B787과는 성능 극대화 vs 효율성으로 지향점이 갈렸다. 적당한 주행거리+수용 능력+운영비를 두루 갖춘 6각형의 사나이 B787에게 시장을 잠식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 이제 시대의 Trend는 최고가 아닌 최적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서 완벽한 것은 없다. B787의 개발 과정은 지나친 원가절감으로 A380과는 다른 상처를 남겼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100점짜리 정답은 없는 모양)

* 플랜 B가 없었다

거대한 덩치를 살려 화물선으로 쓰는 것은 어땠을까? 처음부터 고급 여행을 목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화물용으로 쓰려면 대공사가 필요했다. 그동안 하늘의 럭셔리 호텔로 브랜드를 가꿔왔는데 갑자기 화물용으로 썼을 때의 이미지 손상도 신경이 쓰였을 것

그때부터 군살을 뺀 Neo, 오히려 더 크게 만들겠다는 Plus 등 파생기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이미 떠나간 버스 뒤에서 손 흔드는 격이었다

* 하늘 위의 예술품, 그러나

A380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기내 경험’만 놓고 보면 최고의 만족을 주는 기종이었고, 힘든 해외출장 뒤 귀국길에 즐긴 비즈니스 업그레이드의 서프라이즈는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종이었다고 들었지만)

하지만 좋은 제품이라고 해서 꼭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세가새턴은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여러 면에서 우수했으며 열성 팬들을 끌고 다녔지만 망했다. 시대의 트렌드였던 3D 그래픽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것들을 다 잘해도 핵심을 놓치면 소용이 없다

결국 답은 고객에게 있다. 일부 탑승객들에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지만 점점 '가벼워지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으며 Direct 고객인 항공사, 공항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못한 것이 최대의 실책이었던 것

서비스를 마치고 퇴역한 A380 1호기는 대체 용도를 찾지 못해 인수분해 and/or 박제를 당해 경매에 나왔다고 한다. 상업적 성공과 별개로 팬들은 많은 지 메가폰, 산소마스크, 기내식 카트, 심지어 사이드 스틱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고 보니 게임 중고시장도 세가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잘 나간다고 한다, 진작 현역일 때 잘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