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이야기

우주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위기와 기회

seanny boy 2023. 1. 11. 19:41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주에 미친 영향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에서 우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의 양대 주주이자 SpaceX에게 밀리기 전까지 세계 발사체 시장을 석권했던 나라, 그 빈자리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전도 양면이 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우주산업에 시련의 혹한과 새로운 기회라는 훈풍을 함께 몰고 왔다, 이제는 앞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중요.

 

 

Supply Chain Disrupted 

 

전 세계가 '미국'과 '러시아-중국'을 두 축으로 헤쳐 모이는 중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말 그대로 한 순간에 진행되는 바람에 러시아 (그리고 종종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우주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가 빠져버린 상황을 감안한 플랜 B가 없었다는 것. 

 

당장 러시아의 Soyuz 로켓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프로젝트들이 모두 Delay 되었다. 우주인터넷 기업 OneWeb도 러시아 대신 위성을 쏘아줄 파트너를 찾느라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SpaceX의 로켓을 사용하고 있다 (슬램덩크로 치면 강백호와 서태웅이 앨리웁 덩크를 하는 느낌). 

 

우리나라의 관측위성 도요샛도 원래 2022년에 러시아 발사체에 실어서 쏠 예정이었는데 전쟁이 터지면서 일정이 무기한 연장됐다, 다행히 누리호 개발이 끝난 덕분에 올해 중 누리호에 실려 우주로 갈 예정이다.

 

 

* 덕분에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리는 그림이 나왔다, 새옹지마 *

** 러시아에 이미 발사 대금을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돌려 받았... 을 리가 없겠지 **

 

이렇게 늦게라도 만회 일정을 잡았으면 성공한 편에 속하며, 아직도 발사체를 찾지 못해 좌초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많다, 다시 한번 자기 발사체의 중요성이 입증된 셈.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도 크다. 러시아는 개전 후 얼마 안 있어 ‘우크라이나가 유도 무기를 만드는 곳’이라며 Yuzhmash社의 공장을 폭격했다. 이 회사는 1944년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대표 로켓, 위성 제조기업으로 수출과 해외 프로젝트 참여가 활발한 회사다.  

 

탐사 쪽은 당장 체감이 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제로 준비하고 있던 우주탐사 미션들을 모조리 재검토(사실상 폐기)하고 있다. 미국도 러시아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손 털고 나가 버릴 까봐 조마조마해하는 눈치, 가장 최근 입장은 2024년까지는 함께 한다는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일이다

 

*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이 궤도 위에 떠 있을 수 있도록 추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전쟁, 우주의 위력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에서 위성데이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증명하였으며,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하는 것보다 민간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은 역시 SpaceX의 Starlink. 러시아는 ‘Starlink는 명백한 미군의 전력 자산’이라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우크라이나 군은 Starlink를 단순 통신용에 그치지 않고 무인기 감시, 드론 공격, 대전차 무기 발사 등 군사 활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각종 시도(해킹 포함)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깔려 있는 Starlink 망은 철벽처럼 건재하다.

 

 

Starlink보단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전쟁을 무대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기업은 이밖에도 많다.

 

위성관측 기업 Maxar는 일찍부터 미디어에 무료 영상을 공급하면서 인지도를 키워왔다. 미얀마의 로힝야 학살과 우간다 내전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는데 기여했던 이 회사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태를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미 정부의 중요한 파트너인 Maxar에게는 (이미 매출이 조 단위를 찍는 회사다, 영세한 Startup이 아님) 이번 전쟁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여러 '미래의 챔피언'들이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이용해 위성 데이터를 수집, 처리, 분석하는 통합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각자도생’에는 ‘자강불식’

 

우주의 잠재력을 목격한 세계 각 국도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가장 초조해 보이는 것은 앞마당에 불이 난 유럽. ESA는 앞으로 3년 간 약 17조 유로를 예산으로 확보했는데 이는 지난 3년(2019~2021) 대비 17%가량 증가한 규모다. 유럽의 경기 상황이 최악이며, 여러 가입국 간 합의를 거쳐야 하는 ESA의 (느릿느릿한) 의사결정 구조를 감안할 때 이토록 신속한 예산 편성은 이례적이라는 평가. 

 

 

늘어난 예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Iris2라고 불리는 군집 통신위성. 2027년 구축이 목표이며 기존의 항법(갈릴레오), 관측(코페르니쿠스) 시스템과 연동하는 형태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유럽의 한 매체에서는 ‘유럽에 전쟁이 일어나도 우리가 미국 회사에게 통신위성을 구걸하지 않는 것이 Iris2의 목표'라는 '지나치게' 알기 쉬운 설명을 달았다.

 

영국, 일본, 인도, 호주 등도 경쟁적으로 예산을 늘리고 있다. 최근 우리도 2027년까지 우주 예산을 지금의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공개. 구체적인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위성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당면과제이며 이를 위해 민간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은 같다.

 

모호해지는 경계선,

 

우주를 둘러싼 경쟁이 뜨거워지고 민과 군의 경계가 흔들리면서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다. 누가 Starlink를 쏴서 격추시키면 그 적대행위의 대상은 미국인가 아니면 SpaceX인가, 만일 전자라면 응전하여 보복해야 하는가? 경제성(최대한 싼 가격에 최적화된 성능 구현)과 안전(강력한 보안 프로토콜과 안전장치)이 충돌하면 기업들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위성 정보 중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정보와 공유해선 안 되는 것의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 우주 공간에서 벌어진 적대 행위는 누가 어떤 절차에 걸쳐 조사하고 책임을 물을 것인가?

 

 

위성서비스의 경제적, 산업적 Full Potential을 끌어내고 기후변화 등 인류 공동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데이터 공유가 필수다. 전쟁이 낳은 불안의 불씨가 번져 우주개발이 군비경쟁 일변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서둘러,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우주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한다. 20세기 건함 경쟁이 21세기 우주무기 경쟁으로 반복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것. 인류가 바다에서 이룬 (요즘 좀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공존의 질서를 우주에서 재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